책에서 문장이 모두 퇴근하면 남은 종이들은 무슨 이야기를 할까? 브루노 무나리의 《리브리 일레지빌리》(Libri illeggibili)는 글 대신 종이의 색과 크기, 잘린 모양과 페이지의 연속으로 읽기를 실험한 작업군이다. 출판사 코라이니의 설명에 따르면 무나리는 1949년에 이 연작을 시작했으며, 코라이니를 위한 《Libro illeggibile MN 1》은 1984년에 디자인했다. 이때 종이는 글자를 받치는 바탕에서 벗어나 넘기는 순서와 겹침을 통해 직접 경험을 만든다. 이름은 ‘읽을 수 없는 책들’이라는 뜻으로, 읽기의 실패를 선언한다기보다 무엇을 읽는다고 부를지 장난스럽게 되묻게 한다.
- 크기가 다른 색종이를 겹치고 한 장씩 넘겨보자. 어떤 색이 사라지고 나타날까?
- 처음에는 묶지 말자. 종이를 묶기 전의 순서를 바꾸며 앞뒤 관계를 살펴보자.
- 마음에 드는 순서를 골랐다면 임시로 고정하고 실제로 넘겨보자.
이 제안은 원작의 판형이나 구조를 복원하는 실습이 아니라, 글이 없는 종이 모형에서 순서를 시험해보는 방법이다. 예술가의 책을 펼칠 때 문장부터 찾던 눈을 잠시 쉬게 하면 종이의 가장자리도 읽기의 재료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