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력은 한 사람의 이력과 활동을 짧은 글로 정리하는 형식이다. 이름과 배움과 일과 작업 가운데 무엇을 남길지 골라 책날개나 전시 안내문이나 웹사이트에 놓는다. 삶 전체를 담을 수 없으므로 어떤 경험을 생략할지 정하는 일도 약력 쓰기에 포함된다. 학교와 직장과 작품을 시간순으로 나열하면 읽기 쉬워지지만 그 순서만으로 사람의 모든 관계를 설명할 수는 없다. 새로운 질서는 약력을 현재의 자신이 과거의 경험을 다시 골라 배열하는 문서로 다룬다. 짧다는 이유로 단순한 사실의 덩어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먼저 보여줄지 판단한 결과가 된다.
약력은 한 번 쓰고 보관하는 글인 동시에 계속 고쳐 쓸 수 있는 글이다. 새로운 작업이 생기면 문장을 더하고 지금의 자신을 설명하지 못하는 직함은 뺄 수 있다. 민구홍의 약력은 한 구절씩 이어지고 관련 정보로 퍼지는 웹사이트를 통해 하이퍼텍스트가 되는 사례다. 문장을 한 번에 펼칠지 차례로 드러낼지에 따라 같은 이력도 다른 리듬으로 읽힌다. 분량을 달리해 여러 약력을 쓰면 무엇을 더하고 덜었을 때 인상이 바뀌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런 비교는 자기소개에 꼭 필요한 정보와 더 읽고 싶게 만드는 연결을 찾는 방법이 된다.